옛날 노자산 아랫마을에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영감은 젊어서부터 일이라고는 손에 잡아보지도 않고 아침에 눈을 뜨면 잠 들 때까지 책만 읽었다. 집에 먹을 곡식이 바닥나고 굶어 죽을 판인데도 영감은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책에만 정신이 팔렸다."영감, 먹을 게 다 떨어졌어요.""그런가?"할멈이 다그쳐도 그게 남의 일 인양
즉 아버지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맹탕 헷것’일지도 모르는 ‘흰 쥐’ 때문에 운명적으로 남쪽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 후 지금 민홍의 어머니가 된 철원네와 재혼하여 민홍을 낳았다는 것이다.지난 해 돌아가기 전까지 아버지는 역사의 그늘 밑에서 무기력하고 왜소하게 구멍가게를 지키는 초라한 모습으로 살아왔었다. 그에 반해
그것은 이제까지 어느 집단에도 소속당하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해 왔던 그가 과거의 그릇된 관념을 포기하고 인간 집단에 귀환하리라는 것을 알려 주는 징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석방포로 이명준이 인천항을 떠나 제삼국으로 향하던 타고르 호 선상에서 비로소 현실 속에서 환상(관념)만 추구했던 과거와 결별하고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구체적인 삶을 살고자 결심
그는 남한 사회가 자유당 정권의 부조리와 사회적 부패로 혼란에 빠져 있으며, 개인적으로 누리는 행복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사회 풍조로 인하여 진정한 공동체의 삶을 이룰 수 없는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음을 냉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자신이 꿈꾸던 참다운 삶의 광장을 찾아 배편으로 북한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주인공은 북한에서도 사회주의가 내세우는 공식적인
그러한 가운데 남한의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고 윤애와의 사랑에도 불안을 느끼던 명준은 뚜렷한 확신도 없이 인천에서 배를 빌려 북으로 밀항한다. 그러나 그곳 북한에서 발견한 것은 인민들의 광장이 아니라, 인민과 혁명을 팔아 권력을 잡아 인민의 위에 군림하는 당(黨)의 권위와 밀실이었다. 북한의 노동신문 편집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명준은 해방되던 그해 월북하여
본국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는 제3국인 인도의 관리가 재심한 결과 한국군 2명과 인민군 74명, 중공군 12명 등 도합 88명은 중립국 인도로 귀환되고, 인민군 7,604명은 남한으로, 중공군 1만4,235명은 자유중국(대만)으로 송환되었다. 이상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거제도포로수용소포로들은 크게 세 가지 삶을 선택한 것으로 드러난다. 즉, 첫째는 자유민주주
앞에서는 거제도포로수용소를 소재로 하는 현대소설 가운데 두 줄기의 큰 흐름, 즉 모더니즘 계열의 소설(장용학의 「요한시집」, 강용준의 「철조망」)과 리얼리즘계열의 소설(손영목의 『거제도』)들을 살펴보았다. 전자(前者) 즉, 모더니즘계열의 소설들은 인간의 심리적 내면세계를 여러 기법을 사용하여 형상화하는 소설들을 가리키는데, 주로 심리주의소설로 대변된다. 이
- 손영목의 장편소설 「거제도」이처럼 이념의 반대편에 서있는 윤석규와 조양숙 두 남녀의 운명적 사랑이야기가 두 집단의 갈등의 내면을 깊이 엿볼 수 있는 허구적 장치다.이 두 남녀의 운명적 사랑 이야기란 인민군 적색포로 수용소인 77수용소를 탈출하던 중 부상을 입고 야전 병원에 입원한 뒤 얼마 후 퇴원하여 반공포로 수용소인 73수용소에 재배치되어 반공포로의
손영목의 장편소설 「거제도」다른 한편 소설 「거제도」에 나타난 또 하나의 큰 이야기의 흐름은 포로수용소 내부의 치열한 이념적 갈등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강이다.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거의 모든 단위수용소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다반사는 반동분자로 찍힌 포로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서술된다.「사망자의 참상은 (---
- 손영목의 장편소설 「거제도」앞에서 살펴본 장용학의 「요한시집」이나 강용준의 「철조망」은 주로 거제도포로수용소 내부에서 주인공들이 체험하거나 의식하는 세계를 비논리적으로 배열시킨 실험적 성격의 모더니즘적 작품들이었다면, 손영목의 장편소설 「거제도」는 거제도포로수용소 내부의 포로들의 삶과 당시 포로수용소를 중심으로 살아가던 포로수용소 밖의 서민들의 삶을 사
② 거제도포로수용소 소설에 대한 모더니즘의 또 다른 실험-강용준의 단편소설「철조망」작가 강용준은 1931년 황해도 안악군 용문면 매화리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20세의 나이로 북한의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낙동강 전투에 투입되었고, 그곳에서 숱한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고는 죽음의 전쟁을 피하기 위하
‘중’ 부분에서는 누혜의 죽음과 그 동기를 동호의 시선을 통해서 구성하고 있다. 남해의 고도에는 붉은 기와 푸른 기가 다시 바닷바람에 맞서서 휘날리게 되었다. 살기 위하여 그들은 두 깃발 밑에 갈려 서서 피투성이의 몸부림을 쳤다. 철조망 안에서의 이 두 번째 전쟁은 완전히 자기의 전쟁이었다. 순전히 자기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자기의
단편소설 「요한시집」의 구성은 작품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토끼의 우화’를 비롯하여 상·중·하 등 모두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두 즉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토끼의 우화’는 동굴 속에 갇혀 있던 토끼가 자유를 향해 기어오르다가 바깥세계를 보는 순간 강렬한 햇빛에 노출되어 두 눈을 상실
유엔군과 중공군이 개입함으로써 세계사적 사건이 되었던 한국전쟁의 부산물로 거제에는 포로수용소가 생겨나게 된다. 거제도 고현지구에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게 된 것은 해안에 접해있어 육지로부터 포로 이송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경비문제를 고려할 때 계룡산·옥녀봉·국사봉으로 둘러싸인 거제도의 중심부인 고현지구가 가장 적합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이 작품이 갖는 하나의 의미는, 해방되던 그날부터 종전에 이르기까지 거제의 역사적 격동기를 거제인들의 질박한 언어를 통해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찍부터 전라도 지역의 언어가 판소리나 소설 작품 등에서 갖는 언어의 미학이 언급되고 있었던 점에 비하면 경상도 지역의 언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소설의 언어로는 크게 각광받지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던
이러한 가운데 유엔에서 남한만의 단독선거 실시를 결정하자 남로당 중심으로 전국적인 소요를 획책하게 된 것이 소위 ‘2·7폭동’인 바, 거제에서는 연초지서를 비롯한 두어 개의 관공서가 공비들의 습격을 받아 피해를 입고 경찰관 몇 사람이 총격전 끝에 다치는 정도에 그치기는 했지만 이 사건으로 무장공비가 거제섬 안에 존재한다는
손영목의 장편소설 「풍화」에 대한 이 글은 필자가 2005년 10월 5일 거제시문화예술회관에서 거제문협과 한국전쟁문학회가 공동 주최한 제1회 한국전쟁문학세미나에서 발표된 것을 축약한 내용임.① 격동기의 거제 역사를 처음으로 한 눈에 조감한 증언적 성격의 작품거제 옥포동 파랑포 출신의 작가 손영목의 장편소설 「풍화」는 1982년 경향신문 공모 2천만원 고료
소설 말미 ‘충무공 연보’에서 작가는 이분의 『행록』에 나타난 역사적 기록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그날 공은 적탄을 맞았다. 피가 발꿈치까지 흘러내렸다…. 2차 출정 때는 사천 당포 당황포 율포에서 적선 70여척을 부수었다.(…) 율포는 거제군 동부면과 남부면 사이의 오목한 바다이다.&rdq
-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뭅?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그린 작품인 동시에 ‘자발적 유배를 택한 작가의 장인정신의 승리이자, 오랫동안 반복의 늪 속을 부유하고 있는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거제로 유배온 이교리의 귀양살이 묘사‘거제에 도착한즉 진달래가 만발이더니 지금은 녹음이 우거지고 이른 매미의 찌르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게 되었다. 다행히 (거제)부사(府使)가 까다롭지 아니한 사람이라서 이교리는 요식으로 군색도 당하지 아니하고 또 초하루 보름의 점고(點考) 외에는 별로 간섭도 받지 아니하여 귀양살이로는 편하다면 편하나, 일천